볼티모어 한인 피살 27년 만에 재수사
볼티모어시에서 발생한 한인 윤양구(당시 46세)씨의 피살 미제 사건이 27년 만에 재수사 되고 있는 가운데〈본지 1월 22일 자 A-3면〉, 사건 당시 볼티모어 지역에서 한인을 대상으로 연쇄 강도가 이어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997년 1월 21일 ‘셀마 리커’ 업주였던 윤씨는 그의 가게에 침입한 강도들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총격을 당해 숨졌다. 18일 본지는 당시 보도된 기사들을 확인한 결과, 윤씨가 숨졌던 그 주간 같은 지역에서 한인 3명이 비슷한 강도 피해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윤씨 사건 하루 전인 20일에는 두 명의 복면을 쓴 남성이 볼티모어에 위치한 뉴 길포드 리커 스토어에 들어와 한인 직원에게 총을 쐈다. 직원은 총알을 피했고, 용의자들은 돈을 가져가지 않은 채 도주했다. 이어 23일 한인 마원희(58) 씨가 이스트 22가와 분 스트리트 인근에 있는 그의 식료품 가게에서 강도를 당해 가슴에 총상을 입었지만, 목숨은 건졌다. 나흘 뒤인 27일에는 김치섭(44) 씨가 웨스트 볼티모어에 위치한 그의 식료품 가게에서 강도들에게 등 뒤에서 두 발의 총을 맞고 숨졌다. 특히 김씨는 강도들의 요구에 응해 수백 달러를 건넸지만, 무참히 총에 맞은 것으로 알려져 당시 한인 사회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일각에서는 해당 일련의 사건들에 앞서 1993년에 발생한 조엘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메릴랜드 시민권 위원회 자문위원회가 조사해 2004년 7월 발표한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한인 업주들은 동등한 대우를 받는가(Do Korean American Storeowners in Baltimore, Maryland Get Equal Treatment?)’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1993년 9월 한인 학생 조엘 이씨가 볼티모어의 한 주차장에서 강도를 당하고 총에 맞아 사망했다. 용의자였던 흑인 남성 데본 네버돈(20)은 1급 살인, 강도 및 치명적 무기 사용 혐의로 1995년 7월 재판을 받았으나, 배심원단은 ‘증인들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과 물적 증거의 부족’을 이유로 들며 무죄 평결을 내렸다. 당시 12명의 배심원단 중 11명이 흑인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 후, 이씨 가족은 이 사건이 연방 민권법에 따라 기소될 수 있는지를 판단해 줄 것을 연방 법무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18개월간의 조사가 진행된 후, 1997년 1월 당국 관계자들은 연방 증오범죄법이 요구하는 높은 증거 기준을 충족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네버돈의 무죄 판결과 함께, 연방 차원에서도 불기소되며 이 사건은 종결되었다. 공교롭게도 연방 법무부의 결정이 발표된 후 2주 동안 볼티모어의 한인 상점들에서 총기 강도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당시 조엘 이씨의 아버지는 “연방 결정이 한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러도 쉽게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며 “상인들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표적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18일 ABC뉴스는 윤양구 씨의 사건을 집중 조명하며, 18일 볼티모어 경찰국 미제사건 담당 부서가 2000달러의 포상금을 내걸고 지역 사회의 협조를 호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련기사 한인피살, 27년만에 재수사…97년 볼티모어 리커 미제사건 정윤재 기자재수사 한인 한인 직원 한인 업주들 한인 학생